다 큰 여자는 울지 않는다

지난번 페이퍼에 언급했듯이, 《중급 한국어》에서 지혁씨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카버, 카프카, 세익스피어, 체호프 등의 소설가들을 등장시키며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이 그 강의를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아니, 읽었다. 아, 나도 글쓰기 수업 같은거 대학때 교양으로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한지도 어언 …
















좀전에 친애하는 ㄷㅂㅁㄹ 님의 페이퍼를 읽었다. 최저임금과 기본소득을 얘기하는 페이퍼였는데, 페이퍼중 '카프카'의 <변신>이 언급된다. 그러자 샤라라랑~ 어제 읽은 지혁씨의 카프카가 생각났다. 좀 길지만, 가져와보겠다. 아주 재미있는 부분이다.




여러분 다 읽어 오셨나요?

흔히 카프카의 소설들을 환상문학으로 분류하죠.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변신」 같은 소설이 대표적입니다. 아마 읽지 않았더라도 내용은 알고 있을 거예요.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 버리는 이야기. 유명한 첫 문장이죠? "어느 날아침, 불안한 잠에서 깬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해충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잠자가 벌레로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제 얘기를 잘 들어보세요.

질문을 바꿔 볼까요? 잠자가 ‘어떤‘ 벌레가 되었는지 아는 사람 있나요? 바퀴벌레 무당벌레 장수하늘소? 끔찍한 벌레인 것은 맞아요. 구체적으로 묘사된 부분을 보면 커다란 곤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카프카는 끝까지 이 벌레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아요. 절대로요.

물론 변신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변하긴 변했죠. 카프카가 「변신」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분명 ‘동물이 된다는 것‘이니까요. 다만 그 변신이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이 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잠자의 변신은 인간이 바퀴벌레가 되거나, 기린이 되거나, 코끼리가 - 되는 것 같은 변신이 아니에요. A에서 B가 된 것이 아니라,

A에서 물음표가 된 것입니다. 이동이 아니라 실종이에요. 제 생각에 카프카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겁니다. 잠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동물‘이 되었지만, 이 동물은 무엇으로도 이름 붙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 잠자가 속한 세계는 결코 우리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어둠 속에, 우리의 인식 밖에 숨겨져 있어야만 한다・・・・・・.

이 그림 좀 보실래요? - P130~131



그리고 소개된 그림은 책의 본문을 찍는 대신 검색해서 찾아왔다. 바로 이것.


이건 카프카 생전에 발표되었던 변신의 표지입니다. 이 작품이 출간될 때 카프카는 출판사에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해요. 절대로 벌레의 모습이 보여서는 안 된다고. 여기서도 그렇죠? 남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있고(이미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죠.)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어둠뿐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보이는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정말로 무서운 것들은 눈에 보이지않죠. 오직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어떤 것들인가요? 닫힌 상자, 어두운 문틈, 골목길 모퉁이, 내일 일어날 일, 다가오지 않은 미래……. 진정한 공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텅빈 공간에서 비롯됩니다.

아, 한 가지 빼먹었네요.

백색의 종이………. - P132



아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여러분? 나는 대학 때 왜 이런 강의를 들어보지 못했는가. 아, 들을 수가 없었지. 나는 학교를 잘 안다니는 학고 먹는 학생이었으니까. 만화방에서 라면 먹으며 만화책이나 보던 학생이었으니까. 인생이여, 학창 시절이여 …


자, 카프카에 대해 계속 들어보자.


전에 우리가 서사의 기본 구조에 관해 이야기한 적 있었죠?

갔다가 오는 것이 모든 이야기의 기본이라고요. A가 일상에서 비일상의 세계로 넘어갔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A’가 되는 것이 여행과 이야기의 구조라고 했었어요. 그렇다면 카프카는 어떨까요? 카프카에게도 이 모델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카프카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아주 강렬한 비현실을 경험하죠. 하루아침에 갑자기 벌레(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뭔지 알 수 없는 것)가 되기도 하고, 죄도 없이 체포되어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고,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어요. 현실에서 비현실로 넘어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림으로 그려 보면 아마 이렇게 될 거예요. - P142



카프카의 소설이 비극처럼 읽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일상으로 돌아와 다른 사람이 될 기회를 허락받지 못하기 때문이죠. 잠자는 벌레 비슷한 것이 되었지만,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외롭게 죽고 말아요. 겉으로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 때문에 난 상처로 죽은 것 같아도 찬찬히 읽어 보면 잠자는 거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죠. 카프카의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치 않는 방식으로, 우연히 혹은 갑자기, 비일상의 세계로 추방된 그의 인물들은 거기에 영원히 갇혀 버립니다. 돌아오는 길은 없고,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에요. 죽음. - P143


그건 일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이 아니라 일상과 비일상으로 나뉜 세계와 차원 자체를 떠나 버리는 행위죠. 죽음은 심판이나 형벌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탈출인 거예요. 잠자는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탈출 버튼을 누른 거죠.

죽기 전, 카프카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에게두 번이나 편지를 씁니다. 자기가 죽으면 출간된 소설은 절판시키고 발표하지 않은 원고들은 모조리 불태워 달라고요. 막스 브로트는 알겠다고 말하고, 카프카가 죽은 뒤 그의 모든 원고들을 출간합니다. 만약 막스 브로트가 없었다면 우리는 카프카라는 작가를 얻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아이러니하게도, 비현실에 가 있던 카프카의 원고들(A)은 그의 죽음 이후죽음 대신 일상으로 돌아와 새로운 존재(A)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세계, 우리의 차원 속에서 불멸을 얻은 거죠. 그의 주인공들과는 달리요. - P144



카프카의 소설을 저런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다른 소설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처음에 이미 다른 소설에 대한 표현을 한 터다.



주인공 A는 오른쪽의 일상에서 왼쪽의 비일상으로 갔다가 이렇게 반원을 그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했다가, 처음 떠났던 원래의 자리로 귀환하는 거예요. 여행처럼요. 하지만 정확하게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건 아니죠. 그림에도 보면 이 반원의 지름만큼 다른 위치로 돌아오게 되잖아요? 도착 지점에 미세한 변화가 생기는 겁니다. 마치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온 우리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요. 그러면 돌아온 A는 뭐가 될까요? B? C? 아니면 그대로 A?

만약 A가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왔다면 아마 A는 A‘가 되어 있을 거예요.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게 되는 거죠. 진짜여행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는 결말에 변화가 들어 있어야만 해요. 작품의 주제, 작가의 최종 메시지가 거기 들어 있으니까요. 왜 직접 말하지 않냐고요?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그래선 안 돼요. 그저 주인공의 마지막 변화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독자와 관객에게 ‘보여 주는‘ 거죠. 돈텔, 벗 쇼, 앞으로 지겹게 듣게 될 말일 거예요. 말하지 말고 보여 줘라. 직접 들이밀지 말고 간접적으로 넌지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설이란 하고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거예요. 다른 좋은 예술도 마찬가지고요.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들면 끝나는 거죠. - P38


아 재미있지 않습니까. 너무너무 재미있지 않습니까. 문학 강의 듣고 싶다. 지혁씨가 하는 건 글쓰기 강의이지만.

아니 그런데 이 강의 속에 합평 있다는데, 그건 좀 싫어…



문지혁 작가님, 옮기다 보니 너무 많이 인용한듯해 송구합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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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11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자꾸 잠자 잠자해서 듣는 잠자냥 깜놀깜놀 ㅋㅋㅋㅋㅋ
인용 문구 보니 참 재미있는 소설 같아요!

저 소설 창작 강좌 들으러 다닌 적 있는데 거기서도 합평합니다. 그놈의 합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계속 사라짐. 그런데 참 재미난 게 첫 시간 자기소개 때 글쓰기(소설)에 대해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막 글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웅장하게 부르짖던 사람들일수록 가장 먼저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게 무엇이든 과잉자들을 믿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7-11 16:15   좋아요 2 | URL
이 작가가 애초에 제일 먼저 쓴 소설은 SF 더라고요. 참 신기하죠? 저는 문지혁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고 싶고, 그런데 그 책들이 SF 라는 걸 아니까 읽기 싫은 마음 … SF 아닌 책이 나오면 그건 읽어야지~ 이러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저 합평 너무 싫을 것 같아요. 남의 글 합평 하기도 싫고 내 글 누가 합평하는 것도 싫을듯요. 소설 창작 혹은 글쓰기 수업에서 합평은 피해갈 수 없는건가요? 역시 저는 에세이나 써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글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러는 건 좀 별로. 글 외에 다른 걸 넣어도 별로입니다. 글 아니면 나 죽어, 너 아니면 나 죽어. 그런 거 너무 싫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 아니라고 내가 죽냐? 너 아니라고 내가 죽냐? 이런 자세로다가 살아갈 것입니다.

비 많이 오는데 책이나 사러 갈까요? 흠흠.

단발머리 2023-07-11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쓰기는 아니고 글쓰기에 관련된 국문과 수업 들어갔다가 욕을 100만원치 먹고 장렬하게 전사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안 좋은 추억이죠. 교수님, 왜 그러셨나요? ㅋㅋㅋㅋ이런 수업이라면 저도 듣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아까 페이퍼에도 썼는데, 저는 너무나 강렬하게 이 벌레가 ‘노인‘으로 여겨져요. 이 벌레가 노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잠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주 강렬하게 ‘노인에 대한 태도‘라 여겨져서요. 그래서 저는 그 글이 참 읽기 어렵더라구요.

예전에는 모든 책이 육아서로 읽혔는데, 요즘에는 ‘늙음‘에 대한 메타포가 많이 보이고 또 자주 그렇게 읽혀서 제가 늙긴 늙었구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하하!

다락방 2023-07-11 16:48   좋아요 2 | URL
저는 단발머리 님이 변신에 대해서 노인으로 여겨진다고 글을 쓰신걸 보고 아!! 이렇게 되었어요. 아니, 너무 그렇잖아요? 단발머리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태도에 대해서 말예요. 저 안에, 존재하지만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그런데 완전히 무시해버릴 수만도 없는, 보이고 싶지도 않은 그런 존재요. 그리고 인간이란 결국 언젠가는 노인이 되잖아요? 저는 위의 책에서 설명한 것처럼 표지에 그게 어떤 벌레인지 넣지 말아라, 라고 한 것. 그래서 보이지 않을 때 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에 대해서, 그 대상을 노인으로 놔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늙어감에 대해 하루하루 더 두려워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단발머리 님도 그렇고 문지혁 씨도 그렇고 이렇게 연달아 변신에 대해 보고 나니, 저는 <변신>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3-07-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이 왜 문지혁 작가에게 지혁씨라고 한 줄 알겠군요.^^
글이 참 심오하고 재미나군요.
읽으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맞아요. 잠자는 어떤 벌레라고 말한 적 없었어요.
요즘 10대들에게 유행하는 질문 있잖습니까!
˝엄마 아빠는 제가 자고 일어났더니 바퀴벌레로 변신했다면 어떡할 거에요?˝
울 애들이 바퀴벌레로 착각해서 말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순간 잠자가 바퀴벌레였던가? 헷갈리면서 심오한 소설이었던 것 같았는데 바퀴벌레라고 생각한 순간 혐오스러워지던...ㅋㅋㅋ
덕분에 다시 심오한 소설이었던 시간으로 돌아왔네요.^^
A에서 B가 아닌 A에서 물음표가 된 이동이 아니라 실종이 된 거다!
A는 A‘가 된 것!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비일상!
심오합니다.
현실과 비현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아까 단발 님 페이퍼에서도 잠자 벌레를 노인으로 취급한다는 것도 일리가 있군요.
10대들의 질문이 결국 부모인 우리가 역으로 질문해야 할 것이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ㅋㅋ